나의 이야기

모명재 준공식

법희 2014. 3. 22. 20:29

 

2014.03.22.

 

 도심속 작은 음악회

- 모명재, 모명재길 준공 -

 

모명재(募明齋)

모명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각각 이여송과 진린을 따라 조선에 파병됐던 명나라 작전참모 두사충(杜師忠)이 귀화한 후, 그의 후손들이 1912년에 세운 사당이다.

중국 두릉(杜陵) 출신으로 시성 두보(杜甫)의 후손이기도 한

두사충(杜師忠)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의 부관(지리참모)으로 참전해 활약했다.

그는 조선군과 긴밀한 전략협의를 했고, 그 과정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도 매우 가까워졌다.

임진왜란이 평정된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정유재란(1597)이 일어나자 진린(陳璘) 도독의 비장으로 다시 참전했다.

두사충은 1598년 정유재란이 끝나자 매부이기도 한 진린을 압록강까지 마중한 뒤 자신은 두 아들과 함께 조선에 귀화했다.

장차 명나라가 망할 것을 감지한 그는 귀화 후 대구에 정착했다.

처음에 경상감영공원 일대의 땅을 하사받았는데, 경상도 감영이 그 곳에 들어서면서 계산동 쪽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계산동 일대는 두씨들의 세거지가 되었는데...두씨들은 계산동으로 옮기자마자 주위에

많은 뽕나무를 심었고

그 때문에 이 일대를 뽕나무 골목이라 부르게 됐다.

그러나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고향이 그리운 법!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는 두사충이었지만 고국에 두고온 부인과 형제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두사충은 최정산(最頂山=현재의 대덕산)밑으로 집을 옮겨 고국인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동(大明洞)이라 붙이고

단을 쌓아 매일 초하루가 되면 고국의 천자쪽을 향해 배례를 올렸다고 한다.
모명재의 ‘모명’은 두사충의 호로, 명나라를 사모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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