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팔경 미리 둘러보기
단양팔경 [丹陽八景]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상선암(上仙巖), 중선암(中仙巖), 하선암(下仙巖), 구담봉(龜潭峯), 옥순봉(玉筍峯), 도담 삼봉(島潭三峯), 석문(石門), 사인암(舍人巖)을 이른다.
■도담삼봉 - 도담삼봉은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만수위시 높이 6m의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의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등을 말한다.
■석 문 - 동양 제일의 웅대한 석문으로 도담삼봉 상류 남한강변 좌측에 수백척 되는 2개의 석주가 떠받쳤는데 그 굽어진 형태가 마치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상 선 암-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 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겨운 한국인의 이웃을 연상케 한다.
■중 선 암-조선 효종조의 문신 '김수증'이 명명한 것으로 전해지며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암계류에서 쌍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쌍용폭」이라 한다.
■하 선 암-거울같이 맑은 물이 주야장천 흐르고 물 속에 비친 바위가 무지개와 같이 영롱하여 홍암이라 하며 미륵바위라고도 한다.
■구 담 봉-단양팔경 중의 하나로 기암절벽 암형이 흡사 거북을 닮아 「구봉」이며 물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 무늬를 띄고 있어 「구담」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옥 순 봉-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해있는 옥순봉은 해발 286m로서 엄연히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5-1번지와 9번지 사이에 있는 명소이다.
■사 인 암-사인암은 수 백 척을 헤아리는 기묘한 암석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다. 그리고, 그 도도함 깊은 곳에는 수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지나온 해묵은 세월의 무상함도 느껴진다.
단양팔경 가운데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사인암", '옥순봉" 등
5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입니다
푸르고 영롱한 옥빛 여울이 수백 척의 기암절벽을
안고 휘도는 곳
수려한 절경을 간직한 덕분에 운선구곡(雲仙九曲)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곳에 단양팔경의 제5경에 속하는 사인암이 자리 잡고 있다
운선구곡(雲仙九曲)
운선구곡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황정리,직티리,사인암리.괴평리에 걸쳐
남조천을따라 펼쳐져있다.
제1곡에서 9곡까지는 약 5km정도 된다.
운선구곡 바위에 구곡의 순서를 각자해 놓은 곳이 몇개있다.
제1곡에는 大隱潭이 제2곡은 二曲 ,제5곡에는道光壁이 제6곡에는 六曲,제7곡에는 七曲
제9곡에는 雲仙九曲이 새겨져 있다.
3곡,4곡8곡에도 각자되어 있겠으나 유실또는 제방축조 도로건설 등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다.
一曲 {大隱潭} 큰인물이 은둔하는연못
二曲 {黃庭洞} 황정경을 읽는동네
三曲 {水雲亭} 물과 구름이 어울리는곳 신선세계
四曲 {煉丹窟} 단약을 달이는굴
五曲 {道光壁} 도의 빛이 있는 절벽
六曲 {四仙臺} 네신선이 노닐던 바위
七曲 {舍人巖} 우탁이 유유자적 하던 바위
八曲 {挑花潭} 무릉도원
九曲 {雲仙洞} 우선이 사는동네
운선 구곡을 명명한 사람은 조선 영조때 참판을 지낸 경상 오대익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경삼 오대익이 교리 시절에 퇴락된 수운정을 중창하면서 수운정을 중심으로 운선구곡을 명명했다고 1955년에 단양군수를 역임한 김상현의 저서 " 단양팔경" 에 기록되어 있다.
단양의 사인암(舍人巖)은 남조천(일명 운계천) 변에
병풍처럼 넓은 바위가 직벽을 이루며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 그림과 같다고 찬양했을 정도로
그 경관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청련암은 고려 공민왕에 나옹선사에 의해 창건(1373년)하였으나
1876년 구한말에 일본군의 침략으로 본사인 대흥사가 불에 타 소실되면서 삼성각,
현 장소로 이전하면서 대들보와 기둥을 함께 옮겨온 고찰이다
삼성각 올라가는 길
이 시조는 역동 우탁선생께서 지으신 탄로가(嘆老歌)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렀으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청산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데없네
저근 듯 빌어다가 머리 위에 불리고자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내용을 알 수 없는 암각
약수터
■
고려 시대 경사와 역학에 능통했던
역동 우탁(1263~1342)선생이 정4품 벼슬인 사인(舍人) 재직 시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사인이라는 벼슬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였던 임재광이 그를 기리기 위해 사인암이라고
명명했다고 전하며 암벽에는 우탁의 글이 남아 있다.
|
|
최고의 화원이라 칭송받던 단원 김홍도도
사인암을 그리려 붓을 잡았다가 1년여를 고민했다고 하니
그 복잡 미묘한 매력을 평범한 심미안으로 만끽할 수 있을까요?
깎아지른듯한 암벽의 사인암
사인암 옆의 장기판과 바둑판
사인암 주변에는 조선 효종도의 문신인 곡운 김수종 선생이
명명한 곳으로 유명한 중선암, 사동계곡이 있다.
여름의 사인암도 좋습니다.
가을의 사인암도 좋습니다.
겨울 사인암도 정말 좋습니다.
상선암(上仙巖)
|
|
|
중선암(中仙巖)
|
|
|
하선암(下仙巖)
|
|
|
구담봉(龜潭峯)
겸재 정선의 구담도 |
|
|
이황과 기생 두향의 이야기
구담봉 뒤로 보이는 말목산의 우측 청풍호 자락에 관기 ‘두향’의 묘가 있다.
이곳 출신으로 일찍 조실부모한 두향은 단양고을 퇴기인 수양모 밑에서 자라다가 13세에
기적에 오른 후 16세에 황초시라는 사람에게 머리를 얹었다.
그러나 세달 만에 황초시가 죽자 두향은 본격적인 기생의 길로 나선다.
시화와 풍류에 능했던 두향은 조선 명종 2년(1548년) 단양군수로 왔던 퇴계와 시문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던중 퇴계가 풍기군수로 발령이 나면서 그와 헤어지게 된다.
퇴계의 학문과 인품을 흠모했던 두향은 구담봉 근처에 초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했고 10년후
퇴계가 안동에서 타계하자 두향은 강선대에 올라 신주를 모셔놓고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부자탕을 마시고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두향의 묘는 말목산 산자락에 있으나 말목산이나 구담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청풍호
건너 제비봉에서만 볼 수 있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옥순봉(玉筍峯)
|
|
|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가 정조때 연풍의 현감에 임명되었는데 이때(1796)
옥순봉도(玉筍峰圖 보물782호)를 남겼다고 한다.
도담 삼봉(島潭三峯)
김홍도가 그린 도담삼봉도로, 병진화첩에 실려 있다. 마치 헬기를 타고 가듯 위에서 내려다보듯 그렸다 |
충주댐이 담수하기 전의 도담삼봉 모습으로, 정자는 보이지 않고 대신 사람이 올라선 모래톱이 보인다. |
|
석문(石門)
|
|
|
[마고할미의 전설]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에서 물을 길러 내려왔던 마고 할미가 비녀를 잃어 버렸다. 마고할미가 비녀를 찾기 위해 석문 밑을 긴 손톱으로 마구 파헤쳤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선인옥전인데 아흔아홉 마지기나 되었다. 논두렁을 똑바로 만들어 논을 마치 바둑판처럼 정연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봄철에는 산밑에 있는 사람들의 논에 물이 고여 못자리를 하고 모를 심을 때면 마고할미의 논에도 물이 고였다. 벼가 익어 논에서 물을 뺄 때면 마고 할미의 논에도 물이 저절로 빠졌다. 마고할미는 주변정치가 하늘나라에 버금가는 이곳에 눌러앉아 평생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된 곡식은 천상의 양식으로 썼다고 한다. 마고할미는 긴 담뱃대를 물고 술을 마시고 있어도 농사가 저절로 되었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마고할미는 석문 밑에서 농사를 지으며 오랫동안 살다 죽은 뒤 바위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석문 옆에는 담뱃대와 술병을 들고 있는 듯한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마고 할미바위이다.
|
윤형주/ 우리들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環友會 가을 나들이 (0) | 2011.11.12 |
---|---|
시월의 마지막 밤 (0) | 2011.10.31 |
친구와 함께 듣고 싶은 곡 (0) | 2011.10.13 |
간월재 억새 (0) | 2011.10.11 |
청량산 1박2일 (0) | 2011.10.10 |